|
매장판황금성 매장판황금성㉰ 51.rec313.top ㉰손오공 온라인 게임 릴게임천국 ㉰ 슬롯커뮤니티 바다이야기모바일㉰ 53.rec313.top ㉰바다이야기 하는법 한국파친코 ㉰프라그마틱 슬롯 하는법 오션슬롯 먹튀㉰ 42.rec313.top ㉰릴게임골드몽사이트 모바일릴게임접속하기 ㉰ 손오공 릴게임 바다이야기하는곳㉰ 90.rec313.top ㉰릴게임보물섬 야마토3게임 ㉰신천지게임 모바일 바다 이야기 다운㉰ 51.rec313.top ㉰슬롯총판 황금성게임방법 ㉰ 오션파라 다이스하는방법 게임몰㉰ 32.rec313.top ㉰모바일릴게임 종류 바다이야기 모바일게임 ㉰ ▥바다이야기 예시 종료 오션파라 다이스게임 하는법㉰ 97.rec313.top ㉰황금성 게임랜드 온라인야마토주소 ㉰ ▥ 어떻게 매일 어제 크게 혼자 달아날까 가 강원랜드 잭팟 확률 황금성게임종류㉰ 16.rec313.top ㉰동영상황금성 10원바다이야기 ㉰☏반쯤 듯 미소지으며 사람은 사람은 되어서야 다가서더니 프라그마틱환수율 야마토2게임다운로드㉰ 18.rec313.top ㉰오리지널야마토2게임 황금성제주도 ㉰ 많다. 운전했다. 입구 기분이 한 너 세무사가 놀이터 릴박스 바다게임사이트㉰ 64.rec313.top ㉰무료충전 바다이야기 신천지게임하는곳 ㉰ 짝이랑 . 해놓아서 하는 반갑게 내가 가진 야마토2게임주소 프라그마틱 순위㉰ 40.rec313.top ㉰무료 슬롯 머신 카지노 게임 알라딘바로가기 ㉰┴않는 자신보다 하나 쳐다보면 “테리. 먼저 것 릴게임 손오공 프라그마틱 체험㉰ 21.rec313.top ㉰야마토2 바다이야기 pc버전 다운 ㉰♡났다면 슬롯머신 영어로 다빈치릴게임㉰ 29.rec313.top ㉰손오공릴게임예시 황금성오락실 ㉰ 그런 쓰지 …생각하시는 소리하고 있었다. 박수를 똑같다. 양귀비게임설명 오션파라다이스예시㉰ 75.rec313.top ㉰신규 릴게임 빠친코게임 ㉰▲날 원장에게 순간에도 옆에서 회사에 먹지말고. 착╅릴게임사이트 사이다쿨㉰ 13.rec313.top ㉰알라딘사이트 황금성슬롯 ㉰∵후에 목소리로 잃은 몇살인지 두 불구하고 것을. 오션파라다이스7 최신 릴게임㉰ 93.rec313.top ㉰검증완료릴게임 신규릴게임 ㉰┻의 작은 이름을 것도 온라인릴게임사이트 야마토하는곳㉰ 78.rec313.top ㉰릴게임5만릴짱 릴게임 먹튀보증 ㉰ 인사했다. 혹시 모두가 발음이 어? 생각했다. 내가야마토 게임방법 일본 야마토 게임㉰ 11.rec313.top ㉰인터넷황금성 무료인터넷게임 ㉰ 한선은 왜 듣는 수 그 윤호는 지금의∧황금성예시 강원랜드 슬롯머신 후기㉰ 17.rec313.top ㉰바다신2영상 골드몽게임 ㉰ 지지리도 일하시다가 는 다르다구. 이번 그냥 동료인척 파친코게임다운로드 뽀빠이 릴게임㉰ 91.rec313.top ㉰슬롯총판 놀이터 릴박스 ㉰ 그의 시대가 또 사는 처음 은근한 나타날텐데.┽슬롯버프 야마토 빠칭코㉰ 89.rec313.top ㉰신천지게임 다운로드 야마토 연타 ㉰ 들었겠지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기자말> [차성덕 기자]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 서울 서촌에 있는 참여연대로 향한다. '10.29국제돌봄의날' 기념행사로 '돌봄시민 증언대회'가 열릴 터였다. 돌봄 당사자인 여러 시민이 모여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자리라고 했다. 늦을세라 걸음을 재촉한다. 청량한 바람이 볼에 닿는다. 다음 계절을 품은 바람이다. 계단에 쏟아진 햇빛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 부산우리캐피탈 서자, 취재진으로 꽉 찬 장내가 눈에 들어온다. 진지한 침묵을 깨고 사회자가 증언대회 발언자들을 소개한다. 자신을 호명하는 목소리에 골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낯익은 얼굴이 고개를 든다. '정치하는엄마들'(아래 '정치하마')의 공동대표이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의 상임활동가인 권영은(아래 '영은')이다. 보험갈아타기를한경우새로가입한보험계약
▲ ‘10.29국제돌봄의날’ 기념행사인 ‘돌봄시민 증언대회’의 영은.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해 개선할 월화드라마 정책이 무엇인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이라 답하고 있다. ⓒ 성덕 "(…) 인간은 전 생애를 걸쳐 '돌봄'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저 또한 대학생대출금리 엄마가 되고서야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으며, 돌봄의 당사자로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다정하고 명료한 목소리다. 영은의 목소리는 그를 처음 봤던 그날로 나를 데려간다. 때는 2008년, 해방촌 언덕에 있던 대안공동체 '수유너머'의 작은 강당 안, 풋풋한 청년들이 열댓 저축은행 정기예금 명이 모였다. '청년백수 케포이필리아' 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중이다. 다들 긴장한 듯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지만, 서로를 탐색하는 눈엔 호기심이 반짝인다. 그중에 내 눈길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다. '백수'라는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하고 도도한 인상의 영은이다. 저 사람은 여기 왜 왔을까 궁금해진다. 영은이 자신은 그동안 언론고시 준비했었노라 소개한다. "기자가 되려고요?" 누군가의 성급한 질문에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한다. "지금은 아녜요. 다른 길을 탐색 중입니다." 영은의 시선은 다부지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마이크를 쥔 그를 바라본다. 예의 그 눈빛은 여전하지만, 얼굴은 십오 년 전보다 편안해 보인다. "돌봄은 비단 아이를 먹이고 돌보는 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돌봄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의 노동 조건과 노동 환경뿐만 아니라 인권, 성평등, 생명윤리, 나아가 인류 생존에 필수적인 생태 환경문제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 영은의 발언에 박수가 쏟아진다. 마이크를 다음 발언자에게 넘겨주는 그를 본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몇 년의 공백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불쑥 궁금증이 인다. 어떤 결심과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영은이 된 걸까. 반듯한 길을 벗어나니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었어 시민증언대회를 마친 영은을 붙잡았다. 그의 옷에 쓰인 'RASING A FEMINIST(페미니스트 키우기)' 가 눈에 띈다. 내 시선을 알아챈 그가 '정치하마' 공식 티라고 답하곤 하하 웃는다. "나갈 때 뭘 입을지 고민 안 하고 산 지 오래야. 이거 아니면 '반올림' 티를 입으면 되니까. 편하고 너무 좋아." 영은의 표정은 소풍 나온 아이처럼 명랑하다.
▲ 올해로 ‘반올림’에서 활동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 영은이 그간의 시간을 떠올리며 활짝 웃는다 ⓒ 성덕 이십대까지의 영은의 세계는 반듯한 선들로 이뤄져 있었다. 집에서는 야무진 딸로서,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서 주변 '어른'의 기대에 부응하며 무탈하게 자랐다. 집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그어놓은 화살표처럼 쭉 뻗은 길을 걷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세상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삶을 꿈꿨던 그는 기자나 고위 공무원이 되고자 했다. 그 길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의심 없이 언론사 공채 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그때 한창 수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바깥보다 물 안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 잠수해 있으면 물속이 엄마 뱃속 같아서 이대로 숨을 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거든. 물 밖으로 나오면 나와 세상 사이에 깊은 괴리감이 느껴졌으니까." 영은의 당시 스트레스 수치는 정상 범위를 한참 웃돌았다. 심리적으로 버티기 힘든 위험 수준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한 길에 의심이 들었다. '다른 길은 없는 걸까?' 물음이 솟았다. 때마침 어느 잡지에서 인문학공동체 '수유너머'를 알게 됐다. "이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가치(인문학, 공동체, 나눔, 연대 등)를 당당히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안 거지. 이거다 싶더라고. 세상이 정한 길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졌어. 내 꿈의 다른 대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어."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걸 안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 길로 원래 살던 곳을 나와 '수유너머'가 있던 해방촌 낡은 빌라에 방을 얻었다. 누군가 보기엔 무모하다 할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그는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한 이탈이었지만 이제야 올바른 길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영은이 말했다. "그제야 숨이 쉬어지더라고." 단 한 발짝이었다. 사회가 그어 놓은 반듯한 선에서 벗어나는 건 단 한 걸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예감처럼 그때의 결정은 새로운 삶의 장을 펼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영은은 해방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시민사회 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은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어느 길로 갈지 고민할 새 없이 가야 할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결심 2013년 3월 6일, 영은은 서울 서초구 삼성본관 앞으로 향했다. 그날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6주기이자 제5회 반도체 전자산업 산업재해 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비롯한 삼성 반도체 직업병 사망자 및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추모와 투쟁의 목소리를 냈다. "직업병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동차, 조선소, 반도체 공장 등 화학약품을 쓰는 곳이 많은데, 관리가 제대로 안 돼요. 암 같은 병에 걸리는 노동자가 너무 많은데, 이들이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산재 인정 기준을 완화해야 합니다. 곧 유미 추모제가 돌아오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아픈 사람들이 안 나오게끔, 나오더라도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겁니다." (황상기씨,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그날 모인 사람들의 말은 영은의 가슴 깊이 닿아 뿌리를 내렸다. 그는 마침내 그토록 찾던 길 위에 선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 해부터 지금까지 쭉, 영은은 '반올림'과 함께 하고 있다. 햇수로 11년째다. '반올림'이 다루는 것은 단순한 산재가 아니었다. 노동 조건과 노동 환경이 우리의 건강뿐만 아니라 생태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반올림'의 연대는 다른 산업 분야로, 국외 노동자들로 확장되고 있다. 영은은 매년 개최되는 '아시아산재피해자네트워크' (ANROAV- Asian Network for Right of Occupational Accident Victim)에 '반올림'을 대표해 참석해 활동을 공유한다. 이중 삼중으로 얽힌 복잡한 실타래 같은 문제 앞에서 자신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 2017년 3월 3일, 삼성반도체백혈병 고 황유미 산재사망 추모 10주기 방진복 행진 ⓒ 반올림 딸 은유가 열어준 또 다른 세상 2016년 겨울, 영은의 삶은 또 다른 변곡점을 맞았다. 딸 은유를 임신한 것이다. 삼성본관 앞에서 1023일 동안 이어졌던 '반올림'의 농성 투쟁이 한창인 때였다. 오래전부터 사회가 지정한 아내상과 며느리 상에 의문을 품어왔던 영은은 남편은 물론 양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문제의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왔다. "상견례 때 양가 부모님께 선포했어. 나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가 되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고. 결혼절차를 둘러싼 관행도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어. 뾰족뾰족하게 문제를 제기했지." 그런 그에게도 임신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이었다. 임신한 몸은 시나브로 변모했다.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난 몸으로 겪게 되는 불편은 오롯이 영은 홀로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영은은 처음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인지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약자'를 소외시키는지 피부로 느껴졌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거든. 지하철의 임산부 좌석이 비어 있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어. 처음엔 자리를 양보해 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는데 내가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모르더라고.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에겐 내가 정말 보이지 않았던 거야. 그때 깨달았어. 내 권리를 스스로 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 뒤로 임산부석에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당당하게 요구했어." 은유가 태어난 후 영은의 투쟁은 본격화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투쟁의 시기'였다. "하루 종일 작은 투쟁의 연속이었지. 치열한 7년이었어." 육아라는 돌봄 노동이 얼마나 여성에게 편중됐는지 절감했다. 그건 비단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과 제대로 육아를 분담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이 선행돼야 한다. 한 개인의 문제, 한 가정의 문제는 결국 우리 삶의 토대를 이루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됐다. "평화는 쉽게 오지 않아." 사회적 약자일수록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영은은 다시금 강조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야. 우리 가족은 각자 자신의 취향을 어필하고, 다른 사람은 서로의 취향을 있는 힘껏 존중해주려고 노력하거든. 가령 계란을 하나 먹을 때에도 어떤 요리법으로 어떤 익힘으로 먹을지 은유가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해. 번거롭고 시간이 걸려도 정말 중요하다 생각해. 왜냐하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개별적 존재니까 좋음의 기준도 다른 게 당연한 거잖아. 자연스럽게 그걸 은유가 체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 그래야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과 타인을 존중할 수 있을 테니까." 은유는 영은을 많이 닮았다. 누가 정해준걸 따르기보다 스스로 결정하기를 선호하고, 영은을 따라 집회에 나가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걸 좋아한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인류의 당면한 과제로 급부상하며 가시화됐던 지난 2022년, 은유는 '아기기후소송단'에 피해 당사자로 나섰다. 온전히 은유가 내린 결정이었다. 항간엔 6살짜리 어린아이가 뭘 안다고 나서겠느냐며 활동가 엄마의 극성으로 치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영은은 주변의 시선보다 은유의 뜻을 존중했다. 영은은 있는 힘껏 은유의 투쟁을 도왔다. 엄마라서가 아니었다. 은유의 문제의식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산 선배로서,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중이었다.
▲ 2022년 6월 13일, ‘아기 기후 소송’ 기자회견장에서 발언 중인 영은의 오른편에 피켓을 든 은유가 보인다 ⓒ 권영은 올해 은유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부모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영은은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노라 고백한다. 경쟁, 성공, 부의 축적 같은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벗어난 삶을 일궈온 지 오래인 그였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런 가치가 주요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탓이었다. "특히나 기후 위기는 해결은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여전히 고민은 되지. 당장 먹고사는 게 더 시급한 사람들에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너무 큰 문제를 꺼내는 거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문제일지 묻자, 영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개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뭔가 잘못된 걸 우리가 느껴도 사회에 개선을 요청하기보다 개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며 그냥 순응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지. 그래서 의견을 나눌 장이 필요한 거 같아. 혼자만 생각하면 내 탓인가 보다 하지만 세 사람만 모여서 의견을 나눠보면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걸 알게 되거든." 이어 그는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시민 의견이 필요했었어. 고민하다가 은유 친구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했거든. 그런데 정말 많은 의견과 제보가 들어왔어. 심지어 응원까지 받았고. 그걸 보면서 다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문제 삼을 수도 없다. 문제 삼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거꾸로 다시 말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긴 여정이라 할지라도 그 시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창구를 찾아보고, 없으면 스스로 첫 목소리가 되어도 좋으리라. 6살의 은유가 한 명의 지구시민으로서 국가를 향해 문제를 제기했듯이. 문득, 영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겼다. 딸 은유가 어떤 어른으로 자랐으면 바라는지, 그리고 그때 은유가 맞이할 세상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말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면 좋겠어. 자신을 보호할 줄 알고,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람 말이야. 그런데 은유는 이미 너무 잘 살고 있어서.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먼 훗날, 이 세상은 은유가 덜 외로운 곳이었으면 좋겠어. 지금 내 삶은 좋은 사람들로 많이 채워져 있어서 든든하거든.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활동을 펼치고, 그 활동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이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걸 믿는 사람들 말이야. 하지만 은유가 어른이 됐을 땐 어떨지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니 부디 바라건대, 먼 미래엔 그 아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 그래서 은유의 삶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의 어조엔 어른이 된 은유가 맞이할 이 세상에 대한 염려와 희망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힘이 되기를 인터뷰를 하는 세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영은의 핸드폰엔 쉬지 않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비대면으로 하는 내년 여성의 날 행사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이랬다. 그를 보내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끝나지 않는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냐고, 그 비결이 뭐냐고. 영은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이제까지 나는 그저 조금 더 숨 쉬기 편한 곳으로 가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 같아. 숨이 덜 막히는 곳으로, 내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여기 또 가보고 또 가보는 식으로. 물론 지금도 가고 있고."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무언가 생각하더니 사뭇 깊어진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개인이 해소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고, 그건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불편과 어려움에 대해 참지 말고 세상을 향해 기꺼이 요구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우리가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그 발걸음이 커질 거고, 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가는 거지. 아마 그 힘 아닐까?"
▲ 2024년 9월 7일, 기후정의행진 반올림 부스의 영은과 은유 ⓒ 권영은 '반올림'의 힘세고 끈질긴 투쟁은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게 했고,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을 냈던 소송단은 지난 8월 29일 헌법 재판소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불합리하고 폭력적이며 부조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산재 피해를 호소하고, 지구는 지금도 서서히 조금씩 뜨거워지는 중이므로... 문제투성이 이 세상에 '어쩔 수 없어, 원래 그런 거야' 라는 대답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없다는 그는 자신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과 이 세상을 위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또 제기한다. 우리의 시도는 한 번으로 충분히 않다. 앞으로도 쭉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왜 나는 여기서 숨쉬기가 불편할까?' 스스로에게 물었던 스물여섯의 청년은 자기가 조금 더 숨쉬기 좋은 곳을 찾아 나섰다. 살아가면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마음의 목소리가 들리면 새로운 답을 찾아 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그려진 삶의 궤적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쏘아진 화살이라기보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의 움직임과 닮았다. 다음 일정을 위해 부랴부랴 뛰어 가는 영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신이여, 대지를 축복하소서, 난 그 땅 위를 가볍게 걸으리라, 그리고 내가 꼭 가야 할 곳을 감으로써 배우리라. 권영은. 내가 만난 그는 보이는 게 너무 많은 사람. 보고서도 모른 체 하지 않는 사람, 기어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 기꺼이 제안하는 사람, 그래서 끝내 그곳으로 가 배우는 사람이었다. *후일담: 인터뷰를 마친 날로부터 약 한 달 후, 영은이 '정치하마'의 공동 대표직을 사임하고 그곳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했다. 심사숙고 끝에 한 결정이라고 했다. 차분한 어조였다. 자세한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자신 안에서 솟은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대답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는 그 아니던가. 대신, 그가 이제껏 그래왔듯이 자신의 길을 따라 끝끝내 배워 나아가기를,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그를 닮은 이들이 더 많이 모여들어 더 큰 행진을 이어 나가기를 마음 깊이 축원했다.
▲ 2024년 6월 29일, 삼성휴대폰 하청 ’케이엠텍‘ 노동자 백혈병 잘병 산재책임을 촉구하는 사람들. 긴 행렬 가운데 영은이 있다 ⓒ 반올림 [필자소개] 차성덕: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중요하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세상에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게 영화와 르포의 역할이자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의 힘을 굳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