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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일자리가 없는데 할 말이 있겠어? 대화해봐야 뭐해. 쓸데없는 소리나 하게 되지."
    올해 마지막 금요일인 27일 오전 6시. 인력사무소가 늘어선 서울 남구로역 인근에서 만난 남성은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침체와 함께 건설 현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인력시장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날 오전 4시 기자가 찾아간 남구로역의 기온은 영하 4.9도, 체감온도는 영하 9.5도까지 떨어졌다. 강추위를 뚫고 하루 일자리를 찾아 나온 노동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구로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채용 지털단지역에서 걸어왔다는 박모(56)씨는 "쌀이 떨어진 지 사흘 됐는데 다행히 어제 일을 갔다 왔다"며 "여기 모인 사람 중에 절반 넘게는 (일을 못 구해) 집에 간다고 봐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새벽 노동자의 발' 6411번 버스 첫차를 탔다는 권모(61)씨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 나오는 데 운 좋으면 이틀 나가고, 아예 못 갈 때 근로자서민전세자금대출 한도 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터로 향하는 차를 타야 한다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일거리를 잡은 그에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새벽 노동자들을 태운 6411번 버스 [촬영 이율립]


    오전 5시께가 되자 휑했던 거리는 한국장학재단 생활비대출 사람으로 하나둘 채워졌다.
    일용직 노동자를 태우러 온 승합차 여러 대가 오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감을 기다리는 사람 수는 오히려 늘어갔다. 한 인력사무소 차량 운전자는 "사람이 꽉 찼다. 미안하다"며 현장을 떠났다.
    이곳도 한때는 매일 새벽 1천∼2천명의 노동자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도 사람도 급감 경매브로커 했다. 올해 부도 난 건설업체는 30곳으로 5년 만에 가장 많다. 지난달 건설업체 수는 9만9천957곳으로 1년 사이 700개 가까이 줄었다.
    이날 5시께 거리에 남은 노동자는 어림잡아 200명 안팎에 불과했다. 이들의 평균 일당은 15만원 수준. 인력사무소 수수료와 4대 보험료를 떼면 12만원 남짓이 손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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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용직 노동자들을 태우는 승합차 [촬영 이율립]


    이들의 '하루 운명'이 결정되는 오전 5시 30분께를 전후하자 거리는 희뿌연 담배 연기와 긴 한숨으로 가득했다. 적막 속에 간간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무슨 세상이 이러냐", "일이 없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는 한탄이 섞였다.
    중국 선양에 형제들을 둔 채 19년 전 한국에 왔다는 동포 주경기(62)씨도 이날 일감을 찾지 못했지만,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주씨는 "집에 어머니도 있지, 마누라는 여관에서 청소한다"며 "새벽에 일을 나가면 채소, 반찬이라도 사는데 집에 들어가면 마누라가 뭐라 할까 봐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날 만난 대부분의 노동자는 "일이 없는데 무슨 희망이냐", "앞날이 막막하고 사는 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시흥시에서 오전 3시에 출발했다는 채모(61)씨는 "새해 소망 같은 게 뭐가 있겠나. 삶에 의미가 없다"며 "손주들 보는 재미밖에 없는데 할아버지가 돼 선물도 못 사준다"고 자조했다.
    김근(61)씨는 "그냥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면 행복하다. 둘이 먹으면 더 좋고"라며 웃었다.



    오전 6시께 노동자들이 대부분 사라진 남구로역 인근 거리 [촬영 이율립]


    대부분 기자의 눈길을 피했지만, 새해 소원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털어놓는 이도 있었다.
    중국 동포 김모(63)씨는 "1월부터는 일이 많아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며 "어제 교통사고를 당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도움을 준 소방서에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여의도 리모델링 공사 현장으로 간다는 한 노동자 A(60)씨는 새해 소망을 묻자 "다섯 가지"라며 "장수, 자유, 건강, 행복, 평화"를 속사포로 내뱉었다. 그러면서 "28살인 딸과 계속 떨어져 있었는데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오전 6시쯤 되자 대부분이 포기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30여명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듯 발길을 떼지 못했다. 이들은 기자를 인력사무소 직원으로 착각했는지 주위로 몰려들어 신분증과 자격증을 내보였다. "어느 사무소에서 나왔냐"고 묻던 이들은 이내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주며 자기 이름을 '고강'이라 소개한 한 중국인은 대화가 안 통하자 기자의 전화번호를 받아 가더니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5일 동안 일을 못 했습니다. 내일 일할 수 있나요?"
    2yulri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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