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5-07 05:56
[전문] 文대통령, 독일 일간지 기고문 '평범함의 위대함'-⑤·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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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청와대 제공) 2019.4.1/뉴스1
(③·④에서 계속)

5. 포용적 세계질서를 향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역시 냉전의 한복판으로 휩쓸려갔습니다. 각국 정부들은 새로운 동맹전략을 모색했습니다. 냉전으로 분단된 독일은 평화를 향해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유럽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으로 하루아침에 생이별한 45만 명의 독일 시민들이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1963년 6월, 서독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모였습니다. 그해, 빌리 브란트 시장은 크리스마스 기간에 헤어진 가족과 친척을 만나게 하자는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동방정책의 시작이었습니다. 동서독이 서로를 경쟁과 봉쇄의 대상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월요일마다 작은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이 작은 기도회는 1989년 10월 9일, 선거와 여행의 자유, 독일 통일을 요구하는 평화행진으로 발전했습니다. 처음 7만 명으로 시작된 평화행진은 불과 2주 만에 30만 명을 넘었습니다. 한 달 후인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유럽의 평범한 시민들이 평화를 만드는 일에 나섰고, 적극적으로 각국 정부를 움직였기에 유럽의 질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은 1952년 유럽연합의 모태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발족시켰고, 1975년 현재 유럽 안보 질서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안보협력회의’를 태동시켰습니다.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가 간 관계에서 포용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경과 분야를 넘어 포용하고, 공정한 기회와 호혜적 협력을 보장할 때 세계는 함께 잘 살고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후 질서의 근간인 자유무역주의와 국제주의가 현저히 약화되면서 다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이기주의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위기는 포용과 협력의 정신을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각국의 책임과 규범을 강조하는 협력의 정치가 절실합니다.

다시, 평범한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국내 문제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국가를 바꾸면, 세계질서도 바꿀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국가 운영을 자신의 권리와 책임으로 여기고, 세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연결지어 생각할 때 새로운 세계질서는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국경과 인종,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 때, 세계는 더불어 잘 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고, 일한 만큼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안정적인 복지로 다수가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세계가 포용적 세계입니다. 이미 우리는 한국과 유럽, 세계 곳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포용을 통해 만들어온 성취를 알고 있습니다.

독일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 고용불안, 임금격차, 빈곤, 노후불안 등 각종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보장을 함께 제공하여 사회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복지체계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끊임없는 교육 투자를 통해 국가의 혁신역량을 보전했습니다.

특정 국가나 공공부문의 노력만으로 기후변화 같은 지구 전체의 의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 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기후 전문가들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에 그치면 2도 올랐을 때보다 1천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예견합니다. 국제적 지원과 협력으로 기후변화에 모든 나라가 공동 대응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입니다.

세계적으로 포용성을 수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원전 2000년부터 아시아 국가들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성공적인 국가운영의 첫 번째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산과 물을 다스린다’는 의미 안에는 ‘자연을 존중한다’는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나무를 가꿔 산사태를 방지했으며 물을 가두기보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여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인간과 자연, 개발과 보전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세계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경제발전과 환경보호를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미래 세대들이 함께 살아갈 지구를 위하여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포용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새로운 세계질서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각 나라가 포용성을 강화해 국가 간 격차를 줄이고, 국민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평범한 시민이 이룬 유럽의 통합과 번영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류에게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줄 것입니다.

6. 평범함의 위대함

평범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것, 일상 속에서 희망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새로운 세계질서가 있습니다.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 이름이 아니라 노동자나 나무꾼, 상인이나 학생 등 일반명사로 나오는 사람들, 이 평범한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이름으로 불려야 합니다, 세계도, 국가도, ‘나’라는 한 사람으로 비롯됩니다. 일을 하고 꿈을 꾸는, 일상을 유지해가는 평범함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우리는 소중하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삶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도 알아나가야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또 어떤 행동이 확산되며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이야기되고 기록에 남겨져야 할 것입니다.

평범함이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 못지않게 정의와 공정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인류의 모든 이야기는 “착한 것을 권하고, 악한 것을 벌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깁니다. 동양에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합니다. 이 간명한 진실이 정의와 공정의 시작입니다. 무한경쟁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의와 공정이 더 보편화된 질서가 되어야 합니다.

정의와 공정 속에서만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진행 중인 듯하지만, 인류가 지난 온 길에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해법이 있습니다. 동양의 옛 글은 “곡식 창고가 넉넉하면 예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안다(食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말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으로 세계는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모두에게 권한이 주어지고 의무가 싹트며 책임이 생길 것입니다.

세계가 지금 위기라고 여기는 것들은 평범한 삶이 해결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은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한 사람의 위대한 정치인의 혜안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힘든 이웃을 돕고,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을 아끼는 행동이 쌓여야 합니다. 이 행동들이 한 사람에게 한정될 때,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수 있지만 이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물줄기가 크게 변합니다.

결국 우리는 세계를 지키고 서로의 것을 나누면서, 평화의 방법으로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러하듯, 괴테가 남긴 경구처럼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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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여성 성공 못할 확률
14년 새 61 → 66%로 올라 최고치
성별 차별, 독박육아 등 큰 영향
30대 이후 평균소득 급격히 줄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력 대권 주자로 올라선 2002년 3월. 여성계는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두고 입장이 갈렸다. 일각에선 “여성의 권력 획득이 늦어질 때 희생될 여성들을 생각하라”며 박 전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해선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팽팽하게 맞섰다. 어쨌든 2000년대 들어 여성의 정치권 진출은 지속적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여성의 경제적 불평등은 개선됐을까? 2003년 이후 국내 여성의 불평등도 변화를 추측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서울대 경제학부 주병기 교수는 지난 2일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정책워크숍에서 여성이 일을 통해 최상위 소득 계층(노동소득 20% 이내 계층) 편입에 실패할 확률을 측정한 ‘성별 개천용불평등지수(개천용지수)’를 소개했다. 측정 결과 여성들(30~50세)은 능력이 있어도 고소득층 편입에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2003년 61% 수준에서 꾸준히 올랐다. 2017년에는 사상 최고치(66%)를 기록했다.

주 교수는 “여성들이 고소득층에 편입되려면 경력을 살려 꾸준히 승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일부 ‘유리천장’을 뚫고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도 나오고는 있지만 대부분이 자녀 양육과 가사부담 등으로 경력이 단절돼 비상근 근무자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기회 불평등 지수 상승의 한 가지 이유”라고 설명했다.

개천용지수는 ‘용’이 된 상위층 중 ‘개천’ 출신자들의 비율(N)과 상위층과 하위층 모두를 포함한 전체 집단에서 ‘개천’ 출신자들의 비율(Q)을 따져 구한다. 가령 개천 출신자들이 모두 용이 됐다면 N과 Q의 값은 같아진다. 반대로 용이 된 계층에서 개천 출신자들이 아예 없다면 N은 0이 된다. 이를 지수화(1-N/Q)하면 개천용지수가 1에 가까울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확률은 낮아지며, 0에 가까울수록 ‘완전 기회 평등’에 가깝다는 의미가 된다. 백분율로 환산한 개천용지수가 66%라는 의미는 개천에서 태어난 능력자 100명 중 66명이 기회 불평등으로 인해 실패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성별 개천용지수 분석 결과는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임금 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서 나타난 모습과도 비슷했다. 2017년 남성의 평균소득은 337만원으로 1년 전보다 12만원 늘었지만 여성 평균소득은 213만원으로 7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여성은 결혼 후 육아·가사를 전담하게 되면서 평균소득이 30대에서 정점을 찍고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 학력이 낮을수록 자녀 소득이 적어지는 현상도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학력이 가장 낮은 집단(중졸 이하) 출신자(30~50세) 중 능력이 있어도 소득 상위 20%에 진입하지 못할 확률은 2000년 23%에서 2013년에는 34%로 뛰었다.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2017년 28.9%를 기록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현상은 한국에서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주 교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기회 불평등 정도는 스웨덴·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보다는 높았지만 미국·이탈리아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소득 분배 정책만으로는 불평등 개선과 경제 성장 모두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교육 투자와 인적 자본 축적을 위한 정책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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