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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은 청색의 '을(乙)'과 뱀 '사(巳)'가 합쳐진 이른바 '푸른 뱀의 해'다. 뱀의 해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는 해로, 1965년 이후 60년 만에 맞이하게 됐다. 특히 명리학에서 푸른 뱀은 길한 존재다. 그래서 푸른 뱀이 나타나는 꿈은 태몽으로 간주된다. 태어날 자손이 명석하거나 진취적 기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푸른 뱀의 해를 앞두고 잠잠했던 아기 울음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국 출생아 수는 2만1398명을 기록했다. 작년보다 13.4% 늘어났다. 월별 출생아 수로 보면 지난 7월 이후 192.168.10.1 넉 달 연속 2만 명을 넘었다. 이에 따라 2024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이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15년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가 9년 만에 반전이 찾아온 것이다.
ⓒEPA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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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소멸론' 빠진 한국에 비친 한 줄기 빛
"한국의 인구 감소 속도가 흑사병 창궐로 유럽에서 인구가 감소했던 때보다 빠르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12월2일 칼럼을 통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 밖에도 여러 외신이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조명하며 '국가 소멸론'마저 꺼내 들었다. 암울한 전망이 가득하지만, 반 개인월변 등하는 출산율 소식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리쬔다. 청사(靑蛇)의 해에 한국은 청춘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전국 각지에서 세 자녀 이상을 둔 다둥이 부모들을 만나 남들은 모르는 양육의 기쁨을 물었다.
최근 출산율 증가세를 최일선에서 견인하고 있는 곳은 인천시다. 2024년 1~9월 전국 17개 시도의 전년 동기 대비 출생아 증감 롯데캐피탈 신용카드대출 률을 살펴보면 강원(-5.2%), 광주(-4.7%), 제주(-3.6%) 등 10개 시도가 하락세를 그렸다. 그래도 전국 평균으로 보면 0.7% 소폭 상승했다. 여기에는 인천의 영향이 컸다. 8.3%가 늘어나 압도적인 증가율 1위를 차지한 것이다.
2024년 12월25일 인천 이것좀 중구 월미로 33 인천 상상플랫폼에서 다둥이가족 김준수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초등학교 교사 김준수씨(47) 부부는 인천에서 12세 딸과 9세 쌍둥이 남매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젖먹이일 때에 비해 고단함은 줄었지만 여전히 육아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크면서 내 말을 알아듣고 같이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너무 기쁘다"고 김씨는 말했다.
특히 아이들이 '아빠가 최고야' '아빠 언제 와'라고 말할 때 행복하다고 한다. 김준수씨는 "결혼해서 애를 낳지 않았다면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 말"이라고 했다. 요즘은 주말에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늘 깨닫고 있다. 또 "무엇보다 큰 행복은 이 세상에서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여럿이라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교육 측면에서도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셋이라서 좋은 점이 있다고 한다. 김준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술을 시킨다고 가정해 보죠. 아이가 하나일 때는 아이의 작품에 대해 또래의 시선으로 부모가 반응해줄 수 없어요. 그런데 셋일 때는 아이들이 각자의 작품에 대해 서로 평가하거나 조언을 해줘요. 첫째의 활동을 둘째와 셋째가 보고 배우려고도 하고요. 이걸 보면서 '상승 작용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김준수씨는 "아이가 없는 집보다 오히려 아이가 하나만 있는 집에 출산을 독려하는 게 저출산 극복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도 첫째 딸이 조금 크니까 둘째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느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셋이 됐다"며 웃었다.
전남 강진군에서 네 아이를 키우는 김미나씨 가족 ⓒ김미나씨 제공
전남 강진군은 저출산에 고령화가 겹쳐 정부로부터 '인구감소지역'으로 꼽힌 곳이다. 엄연한 기초자치단체지만 서울의 한 동(洞)보다 인구가 적다. 그러던 강진군에서 최근 들어 인기척이 숱하게 느껴지고 있다. 급등한 출산율 덕분이다.
군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 수는 154명을 기록해 전년 대비 65% 올랐다. 2011년부터 매년 떨어지다가 12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합계출산율은 1.47명으로 치솟으며 전국 기초단체 중 2위를 달성했다. 이후 2024년 들어 그해 11월까지 또 158명이 태어났다. 2년 연속 증가세다.
김미나씨(43)는 강진에서만 자녀를 4명 낳았다. 첫째는 6세 딸, 둘째부터 넷째는 세쌍둥이(딸1, 아들2)다. 김씨는 "출산을 해서 당연한 건 너무 힘들다는 것이고, 중요한 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말에 아이 넷을 모두 차에 태우고 나들이하러 나가면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쳐다본다"고 했다. '어떤 눈빛으로 쳐다보나'란 질문에 그는 "부러워하는 눈빛"이라며 웃었다.
김미나씨는 강진 출신이지만 경기도에서 17년 동안 살며 어린이집 교사 등의 일을 했다. 그러다 강진농협에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 귀향했다. 김씨는 "아무래도 수도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강진의 육아 인프라가 비교적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육아에 적합한 환경이 빠르게 조성되고 있다"며 "키즈카페나 도서관 등 아이를 위한 시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진군의 적극적인 출산지원책도 육아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군은 2022년부터 만 7세 미만 아동에게 매달 60만원어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 육아수당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군은 육아수당이 출산율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정주 여건 개선해 '지원금 먹튀' 막아야"
또 인구 유입을 늘리기 위해 2023년 말부터 빈집을 리모델링해 귀농·귀촌인에게 임대하고 있다. 월세는 단돈 1만원이다. 해당 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80명이 전입을 완료했다. 육아수당과 빈집 리모델링 사업은 전라남도 인구정책 종합평가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김미나씨는 "육아수당을 받기 위해 아이를 가지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출산율 반등 소식에 분위기가 다소 바뀌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아이를 하나만 키우는 분들이 '이번 기회에 둘째 낳아볼까'라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실제 2023년 11월 육아수당을 받은 아동 351명 중 둘째 이상인 아동이 168명(47.9%)으로 집계됐다. 보육 가구의 절반 가까이가 강진에서 둘 이상을 낳아 기른다는 뜻이다.
다만 육아수당 등 금전적 지원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당을 받은 뒤 바깥으로 이사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전남 해남군에서 출산장려금을 받은 엄마 중 15%가 6개월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엔 그 비율이 22%였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출산장려금 먹튀'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의 정주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혜자 탓만 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미나씨는 "나 역시 수도권에 살다 강진에 돌아왔을 때 막막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애들을 데리고 상경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경쟁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삶보다는 자연과 어울려 뛰어노는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한때 《육남매》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1998년 MBC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1960년대 서울 영등포구 공장 지대에서 육남매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작품 방영 시기에 한국은 IMF가 겹쳐 사회 분위기가 침울했다. 《육남매》는 그러한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데 일조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대만으로 수출됐는데 당시 동시간대 시청자가 최고 61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2024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연초부터 밤낮 가리지 않고 웃음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7남매를 키우는 30대 동갑내기 부부의 집이다. 《육남매》의 방영 시기인 1998년만 해도 6명 자녀를 둔 가구는 흔하지 않았는데, 드라마보다 아이 한 명이 더 많다. 일곱째인 막내는 지난 2월에 태어났다.
12월20일 막내가 잠든 시간을 틈타 7남매의 엄마 A씨와 통화를 했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상 익명 인터뷰를 요청했다. A씨는 입을 떼자마자 남편 칭찬을 시작했다.
"남편이 다정하고 육아에 적극적이에요. 친정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가끔씩 아이들이 부러워질 정도예요. 주말에는 꼭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하러 가고, 바쁜 주중에도 어떻게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저보다 요리도 훨씬 잘해요. 남편 직장이 집에서 차로 왕복 3시간 거리라 퇴근하면 분명 지칠 텐데, 늘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있어요. 아이들이 아빠가 만든 음식을 더 잘 먹는다니까요."
"7남매 국가가 다 키워준다? 서운한 소리!"
남편 덕분에 육아 부담은 적은 편이지만, 경제적 사정은 늘 발목을 잡는다. A씨는 "남편이 공직에 있다 보니 살림살이는 좀 빠듯한 편"이라고 전했다. 형편 때문에 특히 씁쓸할 때는 매년 연말이다.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모두 준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럴 때마다 초등학생 첫째 딸이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A씨는 "미안해하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큰딸이 '나중에 열심히 일해서 엄마 돈 많이 벌어줄게'라고 말한다"며 "큰애를 봐서라도 절대 약해지면 안 될 것 같다"고 다짐했다.
그나마 집안 경제 상황에 도움이 된 건 당국의 출산지원책이다. A씨 가구는 지난해 중구청으로부터 출산양육지원금 1000만원을 받았다. 이 정도 규모의 출산양육지원금이 지급된 건 서울에서 최초다. 이 외에도 A씨 가구는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비롯해 △중구형 산후조리비용 △서울형 산후조리경비 △첫만남이용권 등을 받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초단체 등이 각각 지원해 줬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이면에 알려지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7남매를 키우고 있으면 주변에서 '나라가 알아서 다 키워주지 않나'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간혹 '지원 많이 받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요'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며 "그럴 때마다 정말 서운하다"고 했다. A씨는 당국이 금전적 지원에 치중하기보다 좀 더 세밀하고 지속적인 인프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현금성 지원은 한계에 부닥친다는 이유에서다.
인천의 김준수씨도 비슷한 취지로 얘기했다. 그는 "육아지원금을 많이 받아도 아이가 크면 결국 사교육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다자녀 가구에 방과 후 혜택을 다양화하는 것도 좋은 대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출산율 상승세를 지속하기 위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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