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12-29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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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홍석원 지휘의 한경arte필하모닉과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함께 연주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라고 하니 이십여 년 전 쇼팽의 작품들을 함께 녹음했고 2004년 한국을 찾은 마에스트로 안토니 비트와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공연 당시 쇼팽의 작품번호 제14번인 <크라코비악(Krakowiak)>이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공연이었다는 기억도 어렴풋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청자들에게 백건우는 오랜 시간 동행해 온 피아니스트이고, 그의 음악 중 인상적인 첫 음악 혹은 첫 음반이 어떤 것이었는가는 청자의 수만큼 다양하지 않을까 싶다 직장인 .
    [백건우가 연주한 쇼팽의 크라코비악, Op. 14]







    국내 발매용으로 허름한 케이스에 담겼지만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던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작품 음반이었을 수도, 상 농협신용대출은행 이란 상은 휩쓸었던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피아노 작품집 음반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반과 공연들로 쌓아온 백건우의 전방위적 레퍼토리가 마음을 사로잡아 왔음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들은 깊이 인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996년 명동성당에서 연주된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 집담보대출갈아타기 12년이 지난 2008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다시 연주된 이 작품 역시 누군가에게는 육체와 정신의 합일을 이룬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고 있을 수도 있겠고. 1998년 6월 1일, 백건우 본인의 종교이기도 한 천주교. 그 종교의 가치 있는 성당인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을 기념했던 공연 사진 한 장을 걸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하고

    1998년 6월 1일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을 기념하여 본당에서 연주하고 있는 백건우. / 사진. ⓒ판테온


    피아노 독주회에서 피아노의 위치를 찾는 일
    2,500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가 금융지원 열릴 때, 피아노가 놓이는 위치에 대한 피아니스트의 선택은 크게 두 부류인 것 같다. 본인이 직접 피아노의 위치를 찾는 일 아니면 극장의 무대감독들이 정해놓은 위치를 따르는 일.
    2015년 9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은 백건우는 피아노 위치를 정하기 위해 콘서트홀 무대마루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판의 개수를 세는 것으로 최적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무대의 객석 쪽 정중앙 엣지로부터 겹겹이 놓인 길이 약 13cm의 나무판을 세며, 피아노를 한 칸 한 칸 움직이며, 자신의 연주 소리를 들어보던 그는 열여덟 번째의 나무판에 이르렀을 때 콘서트홀 전체로 고르게 퍼지는 소리를 찾았다며 꼭 그 위치에 피아노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무대마루를 새롭게 단장한 2024년 역시도 열여덟 개에서 스무 개 정도의 나무판을 세고, 무대 중앙에 건반 혹은 피아노 제작사의 문장(紋章)을 맞추는 일은 여전히 많은 피아니스트가 선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피아노에도 삶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는 일
    2005년 5월 예술의전당은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를 두 대 구매한다. 일련번호 571309와 571318. 2006년 4월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571309를 선택하고 연습하며 공연을 치러낸 내용은 이미 한 번 소개한 바가 있다.
    ▶▶▶[이전 칼럼] ‘피아노 황제’ 키신의 첫 내한 공연에 대한 석달간의 깨알 기록
    2005년 10월 백건우는 마에스트로 이반 피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했고, 이 공연에서 협연 피아노로 571318을 선택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둥지를 튼 지 일 년이 채 안 된 두 대의 피아노가, 하나는 혹독한 연습과 공연의 시간을 거쳐 키신에게, 다른 하나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채 백건우에게 선택되었다. 협연을 위해 연습하던 도중 백건우는 무대감독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보면대를 좀 부탁합니다""혹시... 무슨 이유이실까요?" (혹시 악보를.....)"음들이 튑니다."
    12년이 지난 2017년, 예프게니 키신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을 발매하며 2006년 한국에서 있었던 공연의 음원을 문의해 온다. 당시 프로그램 중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3번을 자신의 음반에 실황 연주로 싣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다행히 음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예술의전당은 그 음원을 제공하고, 실황 앨범이 그렇듯 연주 장소가 음반에 또렷하게 표시되었다.



    2017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발표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 2006년 내한 공연 때의 실황 연주가 실렸다. CD1의 첫 번째에 연주 장소로 영문으로 새겨진 서울 예술의전당이 보인다. / 사진. ⓒ이동조


    백건우는 한국에서 자신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두 번째 전곡 연주를 9월 1일부터 8일까지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571318로 진행했다. 서른두 곡의 작품을 8일의 기간에 연주해 내야 하는 그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엄청난 것이지 않았을까 싶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마치 2006년의 예프게니 키신이 첫 내한 공연을 준비하던 그 모습처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공연해 냈다. 공연이 시작되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연습을 진행하던 도중 혼잣말처럼 말 하나를 토해냈다.
    "피아노가 너무 지쳤어, 피아노가 너무 힘들어해"".......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무대감독들은 조율사를 찾아가 백건우의 말을 전했다. 피아노 조율사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연습을 함께하고 있던 조율사는 마치 말을 맞춘 듯 대답을 했다. "난 어제저녁부터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 녀석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그렇게 연주하는데 힘들지 않으면 이상하지." 당시에는 무슨 선문답 같던 그 이야기들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한국경제신문 창간 60주년 기념 한경arte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더클래식2024 시리즈8' 공연이 지난 10월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 사진. ⓒ최혁 기자


    올해 10월 공연한 백건우는 역시 공연 전 피아노 선택을 위한 시간을 가졌고, 11월 공연을 진행한 예프게니 키신 역시 2006년처럼 콘서트홀이 운용하고 있는 피아노 중 세 대를 무대 위에 꺼내놓고 고민했다.
    피아노 창고에서 네 대의 피아노를 두고 고민한 백건우 그리고 콘서트홀 무대 위에 세 대의 피아노를 꺼내놓고 고민한 예프게니 키신. 그들 모두 연주에 사용할 피아노를 결정하기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택은 당연히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571318. 예프게니 키신은 말이 없었고,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짧게 말했다.
    "318 소리, 너무 좋습니다."
    예술의전당은 2024년 현재 음악당 내에서 야마하 콘서트 그랜드 한 대를 포함해 모두 열세 대의 콘서트 그랜드를 운용하고 있다. 공연을 위해서 사용할 수도, 연습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으며 특정한 피치 변환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피아노의 평균 나이는 열아홉 살이다. 백건우의 어록은 공교롭게도 다른 해석의 여지를 둔다. 마치 삶의 흐름 같은 그런 해석의 여지. 
    갓 태어난 한 살이 채 안 된 아기의 좌충우돌하는 혼돈을 닮은, 힘들고 지난한 시간의 혹독한 성장을 거치고 성숙을 향해 가는 열두 살, 여든여덟 각자의 소리가 개성이며 유일함이기보다는 다른 여든일곱의 건반과 함께 울려야 한다는, 평균이기에 프라임일 수도 있다는, 그런 해석의 여지.
    연습, 연습, 연습 그리고 연주
    백건우 피아니스트를 기억하는 표현은 ‘연습’ 아니면 ‘연주’, 그 외에는 없는 듯하다. 지금보다 음악당의 냉난방 능력이 부족했던 언제인가, 연습 공간이 추우면 목까지 감싸는 스웨터를 입고 연습 공간이 더우면 옛 표현 그대로 반소매 메리야스 하나만을 걸치고, 어깨에 걸린 소박한 가방 속에는 악보를 가득 채운 채 연습에 연습만을 거듭하는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아마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개관하기 전 백건우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자의 연습 공간이었던 현재 챔버홀의 전신인 리허설룸 사진 하나를 걸며 글을 마칠까 한다.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모든 연주자의 연습 공간으로 쓰였던 리허설룸[위]은 현재 챔버홀[아래]이 되었다. / 사진출처.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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